사람은 언제나 상상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이라는 환상 없이 오직 물건 자체만을 보고 사는 존재였다면, 서랍 한 켠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사진은 그저 화질이 낮은 볼품없는 사진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크게는 오래전 시대의 사람이 사용했던 유물은 그저 쓸데없고,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겠죠. 하지만, 우리에게 오래된 사진은 사진 속에 담긴 오래전 기억이라는 상상과 환상이라는 존재와 함께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소중한 물건이 되는데요.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오래전 시대의 유물은 습도와 온도를, 보관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 채 만질 수 조차 없도록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상상과 환상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른다.’라는 문구는 많은 예술가가 신념처럼 믿고 있는 문장입니다. 물론 노력이라는 키워드는 예술 외의 직업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도 삶의 중요한 태도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문구처럼 노력은 미술인에게 화려한 기교를 선물했고, 일반 관객에게는 개인 영역의 전문성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가끔 시각예술은 잔인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는데요. 의외로 관객에게 쉽게 기억되는 작품은 기교가 화려하게 넘치는 그림보다 간단한 선과 색을 이용해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죠.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부분입니다. ‘사람이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라고 표현되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을 살펴보면요..
개인적으로 역사와 미술을 공부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취향과 다양성의 존중인데요. 취향과 다양성의 존중을 개인적인 신념처럼 간직하고 있음에도 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채프만 브라더스의 작품이 있는데요. 어린아이의 신체를 자르고 붙이기도 하고 그 외 대단하다 싶을 정도의 다양한 방식으로 잔인하고 기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포용성 있게 넓은 시각으로 접근했음에도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취향이 존재함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죠. 작품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와중에 한층 더 놀라움을 선사하는 부분은 또 이런 작품에 취향을 가진 관객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인데요. 일반적으로 예쁘고 아름답다고..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그의 작품이 그저 예쁘고 감성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런 특징이 도드라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꿈의 열쇠’와 함께 잡담을 나눠볼까 하는데요. 창문 액자 같은 틀 사이에 말과 시계 등을 그려놓고는 말 그림 밑에는 문을 뜻하는 영단어 도어를 적어놓고, 시계 밑에는 바람을 의미하는 영단어 윈드를 적어놓은 등의 요상한 작품이죠. 생각 없이 보고 있자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초현실적이구나...’라는 표현 외에는 설명하기가 모호한 작품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남자들이 우산을 쓴 채 허공에 떠 있는 등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나 물건을 이용하는데요. 현실과는 동떨..
추상표현주의라고도 통칭하는 이런 물감을 흩날린 그림, 선을 일정하게 그린 그림 등은 참 무의미해 보이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무한에 가까운 선택의 폭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 나가는 그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그림이지 않을까 하는 잡담 같은 생각을 해보고는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던 저에게 추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준 유일한 생각이었죠. 물감을 흩날리고 선을 몇 개 그리는 그림은 사실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는 그림입니다.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일반적인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여 더 잘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닌 것이죠. 그런데, 무엇이 더 쉽냐, 어렵냐를 떠나 그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 선택의 폭으로만 살펴보면요. 화가는 붓을 흩날리기 시작해야 하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하나의 그림에 담긴 여러 개의 시선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림을 조용히 보고 있자면, 그림 속 이미지가 화가의 시선인지 혹은 화가의 상상인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고전 명화보다는 현대미술에 더 많은 관심이 있던 저에게 그림에 대한 큰 흥미를 끌어낸 몇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여러 시선과 함께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화가에게, 또 관객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껴보고 생각해보기 좋은 작품이니 말이죠. 공주, 공주의 시녀, 난쟁이, 국왕과 왕비, 시종 그리고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까지, 그림 속에서는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그림 앞에선 관객이 가장 보편적으로 느끼는 시선은 바로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
1945년 8월 15일이라는 시간의 표기에 ‘광복이 이뤄진 역사적인 날’이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유는 해당 날짜에 광복이라는 기념적 사건이 이뤄졌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우리가 매일 함께하고 있는 시간은 날짜라는 시간의 표기법 속에서 해당 날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혹은 우리가 광복을 기억하듯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건과 변화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날짜 속에서 벌어진 사건에 집중하는 날짜의 평범한 사용법과는 다르게 오직 날짜 자체에만 집중한 작품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캔버스에 덩그러니 그려진 날짜가 눈에 띄는 ‘투데이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일본 출신의 작가 온 카와라가 제작한 시리즈 작품인데요. 1966년에 시리즈를 시작해서는 죽음을 ..